지리학에서 공간 데이터 사이언스로 (From Geography to Spatial Data Science)

2024 다전공 수기 공모전 — 🏆 2등 수상작


1. 서론

저는 2020년 사회과학대학 지리학과에 입학하였고, 2023년 2학기부터 통계학을 복수전공으로 이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독일의 로스토크(Rostock)라는 도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공계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독일 글로벌 인재 양성 플랫폼’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지난해 9월부터 막스 플랑크 인구통계학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Demographic Research)에서 6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격요건에서 알 수 있듯이, 제가 통계학이라는 이공계열 전공을 복수전공으로 이수하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 이런 기회는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전공 제도를 통해 대학 입학 이후 저의 삶은 크게 넓어질 수 있었고, 이는 그 단적인 예시에 불과합니다. 다전공 진입을 앞두고 고민하는 분들이 저의 경험을 접함으로써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며, 저의 다전공 이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2. 넓은 세상에 대한 관심, 통계학을 통해 넓히다

제 이름을 한자로 쓰면 알 지(知)에 넓을 호(澔)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드넓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어릴 때부터 많았고, ‘공간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공간과 상호작용을 하는가?’라는 관점으로 세계의 여러 문제를 바라보기를 좋아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지리학과에 지원하게 되었고, 이는 과거의 분류에 따르면 ‘문과’ 계열의 전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등학교 때 수학 동아리를 개설할 정도로 수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 또한 높았습니다. 그래서 1학년 1학기부터 ‘인문 사회계를 위한 수학’이라는 교양을 들으며 수학에 대한 흥미를 이어 나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1학년 2학기 때 과감하게 2학년 전공 선택 수업인 ‘컴퓨터 지도학’을 수강했는데, 이것이 저의 삶을 크게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별 과제로 GIS(지리 정보 시스템)와 공간 데이터를 이용하여 서울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했는데, 저희 조는 강남구의 불법주정차 단속 위치 데이터를 분석하여 예산 제약하에서 최적의 공공 주차장 신규 입지를 도출해 내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MCLP라는 수학적 최적화 기법과 국지 모란 지수(Local Moran’s i)라는 공간 통계량을 공부하게 되었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양적 연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때부터 공간이라는 프레임워크와 통계학적 방법론을 결합한 공간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분야는 저의 관심 학문 분야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도 흔히 말해 ‘떠오르고 있는’ 분야이던 데이터 사이언스를 배울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가장 관련이 깊은 통계학을 복수전공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주변에서 이를 만류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단 지리학과에서 통계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는 학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통계학 이론보다는 코딩 능력이 더 중요하다’라거나, ‘통계학과 전공 수업은 너무 어렵다’, ‘우리 과 전공에서 배우는 내용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으냐’는 목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복학 이후 수강한 ‘선형대수학’과 ‘해석개론’ 수업이 재미있었고, 단순히 개념을 배우고 응용하는 방법을 기계적으로 학습하는 것보다 개념에 관련된 정리들을 엄밀하고 체계적으로 증명해 나가며 학습하는 수리과학부나 통계학과의 수업 방식이 저에게 더 잘 맞다고 느껴졌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선택을 믿고 통계학과 복수전공에 지원하였고, 본격적으로 복수전공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3. 다전공 진입 후 겪은 어려움과 깨달음: 넓어져야 알 수 있는 것

스스로 수학을 좋아하고 나름 잘 한다고도 생각했지만, 뛰어난 수리적 역량을 갖춘 학생들이 소속된 서울대학교 통계학과의 전공 수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교양 통계학 수업만 들은 상태로 2학년 2학기에 ‘자료분석 및 실습’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을 때,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개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교수님과 활발한 질의응답을 할 때, 저 혼자 어떤 말인지조차 몰라 메모해 두고 수업이 끝난 뒤 인터넷을 찾아봐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전산통계 및 실험’이라는 R 관련 전공 필수 강좌를 수강한 통계학과 전공 학생들이 유려하게 R 코드를 써 내려갈 동안 저는 그 두세 배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습니다. 참고로 통계학과 전공 강의의 대부분은 ‘수강 포기’가 되지 않습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통계학을 복수전공 하는 것을 만류했던 이들의 목소리와 낙제점을 받는 상상이 떠올랐습니다.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남들 하는 대로 했다면 학점이라도 잘 받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도 했습니다. 하지만 첫 전공 수업이었고, 벌써 포기한다면 저 자신에게 너무나 부끄러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유튜브에서 손아섭이라는 야구 선수가 ‘지치면 진다, 하지만 미치면 이긴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개념이 이해될 때까지 반복하고 시험에 나왔을 때 충분히 응용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했습니다.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예시들을 테스트해 보며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조교님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기말고사와 기말 프로젝트(학기 중 배운 자료 분석 기법을 활용하여 예측값을 도출하고, 예측오차가 적은 순서대로 점수가 부여되는 방식)를 마치고 그 결과를 확인했을 때, 저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말 프로젝트도 상위권에 들었고, 기말고사 성적은 수강생 중 1등이었습니다. 학부 수업 시험에서 1등을 한 것이 객관적으로는 대단히 큰 성취가 아닐 수 있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수업을 듣던 초기의 좌절감, 중간고사 이후 되뇌었던 후회와 포기의 유혹을 떨쳐내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성장의 결실을 얻어내었다는 점에서 입학 후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계속해서 통계학 공부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후 통계학과의 다른 전공 수업을 수강하면서도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어 튜터링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어서 통계학과 선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고, 유사한 개념을 반복 학습하면서 이해력이 점점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수업을 들을 때 학점을 잘 받는 데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강의 자체에서 배우고 깨닫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기에 그런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통계학과 수업을 수강하면서, 저의 인식이 넓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통계학과에서는 대표적인 통계 분석 기법인 회귀분석에 대해 하나의 과목으로 한 학기 동안 매우 자세하게 배웁니다. 사실 주어진 데이터에 대해 회귀분석을 수행하는 방법은 한 학기가 아니라 몇 시간만 배우면 쉽게 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귀분석의 원리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만이 그 데이터에서 비롯될 수 있는 편향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고, 분석 결과에 자칫 숨어 있는 오류가 무엇인지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지리학과 전공 수업 중에도 데이터를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 제한적이다 보니 더미변수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사용한 경우나, 기계적으로 절차만을 따라할 뿐 그것이 분석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왜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통계학이라는 분야로 제 인식을 굳이 넓히려 하지 않았다면, 저 역시 그런 오류에 갇혀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넓어짐의 과정에서 기존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이는 질적인 변화를 불러온다고 믿습니다. 그 과정에서 귀찮음과 어려움이 수반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때때로 그것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레시피를 읽고 그대로 따라서 조리한 음식과 재료와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요리사가 만들어낸 음식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으니 말입니다.

4. 다전공 이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미래 계획: 넓어짐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유

넓어짐은 또 다른 넓어짐을 촉발하기도 합니다. 지금 제가 있는 막스 플랑크 인구통계학 연구소는 출산, 사망, 이주와 같은 인구 현상을 데이터라는 렌즈를 통해 분석하고, 다가올 인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는 곳입니다. 인구학 자체가 간학문적 성격을 띠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곳에 있는 연구원의 전공은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통계학, 사회학 등으로 굉장히 다양합니다. 그리고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을 동안 하나의 전공에 머물러 있던 사람이 거의 드뭅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매주 1회 이상의 세미나에 참여하여 활발히 의견을 교류하고, 협업하여 논문을 출판합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관점을 넓히며 창의적이고 훌륭한 연구 결과들이 만들어집니다. 연구 주제는 기후 변화가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 이주민와 원주민 간의 유병률 및 기대수명의 차이, 유럽 초저출산 현상의 생물학적-사회경제적-심리적 요인 분석 등으로 굉장히 다양한데, 이러한 연구들은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이 모였기에 가능한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넓어짐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만나 인류의 지적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넓어지기로 한 과거의 제 선택을 더욱더 긍정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연구소에서 거대 언어 모델(LLM)을 비롯한 자연어 처리 기법을 핵심적으로 활용하여 각국의 이민자에 대한 소셜 네트워크상 의견의 차이를 연구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통계학과에서 배웠던 자연어 처리, 머신 러닝 기법과 지리학과에서 배웠던 교통 네트워크 분석 방법들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라 주저했거나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지 못했더라면, 제가 이러한 연구에 기여할 수 있던 바는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인턴십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뒤로도 저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계학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공간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연구를 지속하고 싶습니다. 저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대로 ‘넓은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지리학도이자, 더 ‘넓은 시각’에서 세상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하는 간학문적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5. 결론

첫 다전공 진입 신청을 앞두었던 2학년 1학기가 떠오릅니다. 다전공을 신청하는 것이 좋을지, 어떤 전공을 신청해야 할지, 학점이 진입하기에 충분한지 등 많은 고민을 동기들과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통계학을 선택한 그때의 결정에 전적으로 만족하지만, 다른 결정을 내렸을 때 더 나은 결과가 있었을지는 물론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제가 통계학을 복수전공으로 이수하기로 했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성취와 만족감을 얻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인턴을 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대학 생활에서 ‘정답’, 정해진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싶다면, 하고 싶은 일과 관계된 다전공의 길로 과감하게 나아가기를 감히 권합니다. 그 길의 끝에서 넓어진 자신의 모습과 놀라움의 순간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